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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필요한 시간, 시골집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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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 전원속의 내집​

오랫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시골집. 지친 맘을 달래러 찾아든 새 주인은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옛 흔적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 작은 휴식처에서 그녀는 매일 느슨해지는 연습을 한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보이는 옛 창고 건물이 이국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어느덧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를 마주하고 있다. 창고에 쌓인 낡은 물건에서 보물처럼 반짝이는 아이들을 찾아내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 메웠던 짐들을 들어내 정리했다. 1톤 트럭 7대에 이르는 양이었다. 다시 빈자리를 보며 쌓인 흙먼지를 말끔히 닦아내고 벽과 바닥에 새로 색을 입혔다. 어두운 창고 안에서 세월만 보냈던 문짝, 의자, 채반, 조명 등도 하나둘 제자리를 찾았다. 그렇게 집에 마음을 쏟는 사이, 계절이 바뀌었다.

 

창고 안에서 바라본 뒷마당 풍경과 김태연 씨. 지난 4월 이사 와, 무성했던 나무를 직접 정리했다. 아궁이가 있는 창고는 쓰임을 고민 중이라고.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해외 출장에 몸도 마음도 몹시 지쳐있었어요. 시차 적응할 겨를도 없이 미국과 베트남, 한국을 오갔죠. 그러던 어느 날, 하이힐을 신은 발등 위로 붉게 피어난 건선을 보고 있자니 문득 서글퍼지더라고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면서.”



올 초, 김태연 씨는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뒀다. 섬유디자인을 전공하고 한 의류회사의 해외 영업을 맡았다. 뉴욕의 좋은 호텔에 머물며 바이어를 만나고 저녁 식사에 초대받기도 하는 커리어 우먼의 삶이 남들에겐 화려해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은 일일 뿐.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했다. 늘 무언가로부터 바쁘게 쫓기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현관문 옆 걸린 명패와 1966년 7월 26일 기공 날짜가 적힌 정초석이 집의 나이를 실감케 한다. /  선산이 있는 뒷마당에서 바라본 집. 할아버지가 정리해둔 장독대가 정겹게 자리한다. 연노랑으로 벽을 칠한 작은 방 창문 아래에는 중고로 산 소파가 놓였다. 

 

경기도 용인에서도 깊숙이 자리한 동네, 남사면 방아리(防牙里). 좁은 시골길을 한참 지나 가장 구석진 데 있는 단층집을 고쳐 살기로 결심한 것도 그때였다. 일곱 가구가 전부인 이곳은 김씨 일가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로, 옛날에는 막다른 곳에 있다고 해서 ‘막골’이라 불렸다. 이 단층집 역시 태연 씨 집안의 어르신이 살던, 50살이 넘은 주택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0년 가까이 방치되었던 터라 ‘사람이 살아야 집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을 것 같다’면서 친척분이 선뜻 집을 빌려주겠다 했을 때, 그녀는 못 해도 1년은 살아보겠다며 덥석 응했다. 창호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참 예뻤던, 집과의 첫 만남이었다.

 

현관에서 바라본 거실. 맞은편 왼쪽에 다이닝룸, 오른쪽에 침실이 있다. 거실에는 바깥 풍경을 향해 벤치를 두었다.창 너머 초록이 그림처럼 담기는 고즈넉한 다이닝룸 

“새 물건을 쉽게 사들이지 말 것, 할아버지가 모아둔 물건들을 집에 녹여낼 것,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생각이 잘 깃든 공간을 만들 것. 이게 제가 세운 원칙이었어요.”



하늘색이 감도는 회색빛 문짝은 창고에서 나와 빈티지한 아트월로 거실에 놓였다. 짙은 고동색 문짝 두 개는 침대 헤드로, 오래된 여물통은 다이닝룸의 펜던트 조명으로 변신했다. 계단실 난간 손잡이를 다리 삼아 식탁을 만들고, 버려진 창틀을 주워와 거울을 만들었다.

 

창고에 있던 문짝으로 만든 침대 헤드, 옥색 침대 헤드를 재활용한 콘솔, 직접 디자인하였다. 제작한 커튼과 침구 등으로 편안한 침실 공간을 완성했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는 그녀의 백화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재봉틀 책상은 7만원, 벤치는 단돈 1만원에 샀고, 근사한 원목 책상은 운 좋게 무료 나눔 받았다. 집 안의 모든 가구 중 새 제품은 침대 하나뿐. 페인트칠을 비롯해 장판을 걷고 바닥 에폭시 작업까지 모두 직접 했으니 집을 고치는 데 든 돈은 2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대신 몸이 고되고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녀는 그저 모든 게 재미있었다고 전한다. 그렇게 완성된 공간은 손때 묻은 자연스러움이 창마다 담긴 초록과 어우러지고, 가구와 소품들은 저마다 머금은 시간과 이야기를 도란도란 펼친다.

 

색감이 매력인 문짝을 배경 삼아 놓은 거실의 장식 테이블. 녹슬고 오래되었지만 정든 물건들이다. /  갈 곳 없어진 나무 막대를 선반용 사다리로 재탄생시켰다. 

“화창한 날도 좋지만, 비 오는 날이 가장 행복해요. 빗소리를 음악 삼아 거실 벤치에 앉으면 저 멀리 고라니 한 마리가 유유히 지나가죠.”



처음엔 무서웠던 밤의 적막함을 이제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때때로 찾아오는 지인들과 실컷 낮잠을 자고, 창고의 네모난 창을 TV 삼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아직 미완성인 주방 한편, 직접 만든 선반에 창고에서 나온 유기그릇 등을 정리했다. /  작은 방의 벽장 아래에는 벽지를 뜯어 오래된 느낌을 내고, 갖고 있던 캔버스 액자를 리폼해 걸었다. 태연 씨가 가장 좋아하는 벽이다.앞마당 벤치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 태연 씨

 

이 쉼표 같은 공간을 그녀는 앞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예정이다. 8월 첫째, 둘째 주말엔 인터스타일(人터style) 다이닝 프로젝트와 연계한 ‘1박 2일 홈캉스’가 진행되고,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공감하고 전통 음식을 만드는 등 다양한 클래스도 계획 중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멀어져 나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가다듬는 일. 그녀의 삶을 바꿔준 집은 이제 또 다른 이의 터닝 포인트가 될 준비를 한다.

 

취재협조_ 방아리 코테지 https://blog.naver.com/99teddy

취재_ 조고은 | 사진_ 변종석

ⓒ 월간 전원속의 내집  Vol.234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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